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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라이프

감정병동일지 5화: 🛎️ 콜벨을 자주 누르던 그 환자

by Kanoa 2025. 5. 9.

*이 글은 제가 간호사로서 겪었던 한 순간을 기록해 둔, 개인적인 감정 기록입니다.

비오는 날 창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여자


병동에 콜벨을 자주 누르시는 환자분이 있었다.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꼭 콜벨을 누르셨고,
하고 싶은 게 안 되면 될 때까지 눌러대시며 닦달하셨다.

그래서 간호사들 사이에선
“아휴 또 저 환자 벨이야...”
하고 자연스레 긴장하게 되고 피하게 되는,
솔직히 말하면 조금 부담스러운 환자였다.

그런데 묘하게,
그 환자분은 나를 좋아해주셨던 것 같다.
인사도 자주 하시고, 간식도 사다주시고, 
표정도 다른 간호사들 대할 때보다 한결 부드러웠다.

나도 이상하게 그분이 밉지는 않았다.


🍃 전원 준비 중, 그분의 한 마디

어느 날 갑자기 그 환자분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숨을 헐떡이고, 몸에 이산화탄소가 쌓여서 의식도 흐려지고

결국 산소도 고용량으로 적용해야 했다.
대화를 하다가도 주무시는 일이 늘었고,

몸도 점차 붓기 시작했다.

담당 주치의는 더이상의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했고,
호스피스를 권유했다.
가족들은 연고지에 있는 병원으로의 전원을 원했고,
그날 바로 퇴실 준비가 시작됐다.

전원 준비로 환자 곁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고,
숨도 차고 졸린 와중에
그분은 나를 보고 이렇게 물으셨다.

“밥은… 먹었어?”


🥲 간호사이기 전에, 나도 사람인데

그 순간 참… 먹먹했다.
그 숨 가쁜 상황에서도 나를 걱정해 주는 그 한 마디.
환자분은 본인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을 텐데…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 말이 참 미안했고, 감사했고, 슬펐다.

병동을 떠나는 환자의 손을 잡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조심히 가세요'라는 말밖에는... 

그분이 병동을 떠나시고 나서도,
가끔 그분 생각이 난다.
...물론, 콜벨이 그립진 않다.
(콜벨은 그립기엔 너무 고음이다…😵‍💫)


오늘도 나는 간호사로 하루를 버텼다.
때로는 감정노동에 지치기도 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사람과의 짧은 인연이
오래 남는 걸 보면…

나,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 싶다.